이어 本 경주
경주 한 바퀴
거닐며 배우는 관용·베풂·미덕
교촌마을에 가다
교촌(校村), 교리(校里), 교동(校洞)으로 불리는 경주 교촌마을은 한반도 최초 국립대학 ‘국학’(신라 신문왕 2년(A.D.682))이 세워졌던 곳으로, 고려시대 향학, 조선시대 향교로 이어지는 천년의 배움터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최부자댁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의미 깊은 교촌마을로 함께 떠나보자.
글 김수란 사진 황지수

신라와 조선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곳
신라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긴 세월만큼이나 교촌마을 주변에는 유서 깊은 역사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천년의 숲 계림,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 맺어진 문천교(蚊川橋) 터, 김유신이 머물다 간 재매정, 찬기파랑가의 충담사가 경덕왕을 만나기 위해 건넌 월정교, 도화녀를 사랑한 진지왕, 선덕여왕이 만든 첨성대 등등….
삼국유사 속 수많은 이야기의 무대가 교촌마을과 주변을 흐르는 남천을 따라 흩어져 있다. 여기에 최부자 고택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전통한옥과 향교 등 조선문화까지 더해져 그 깊이와 무게감은 더욱 짙어진다. 신라와 조선의 문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곳, 그 중심에 교촌마을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최부자댁
교촌마을에는 12대에 걸쳐 경주 최씨 가문이 살던 최부자의 종가를 만날 수 있다. 최부자 고택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진 작은댁(교동법주) 옆에 있어 큰댁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 옆 양지 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최씨 가문의 7대 최부자 최언경이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서 교동으로 이주하며 정착한 1779년경 건립된 고택이다. 사당을 안채의 동쪽이 아닌 서쪽에 배치한 점, 집의 높이를 낮추기 위해 기둥을 낮게 만든 점, 1m가량 흙을 파내어 집터를 낮게 한 점은 성현을 모시는 경주향교에 대한 권위를 존중하기 위한 배려로 최부자댁만의 건축적 특징이다.
지어질 당시 무려 99칸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 곳간 정도만 남아있다. 그나마 교촌마을 유일의 솟을 대문만이 그때의 위용을 짐작케할 뿐이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고,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는 등 6가지의 가훈을 실천하며 올바른 부자의 정도를 걸어온 최씨 가문의 삶은 후세에도 귀감이 되어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됐다.
교촌홍보관과 경주향교
관광객들이 교촌마을의 볼거리, 즐길 거리, 먹거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마을 초입에는 교촌홍보관이 자리하고 있다. 인근의 문화유적은 물론 교촌마을의 유래와 역사도 함께 살펴볼 수 있어서 마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최부자 가문을 소개하는 여러 자료들과 영상물 등도 전시돼 있어, 최부자 정신의 의의를 몸소 깨달을 수 있다.
홍보관을 뒤로하고 천천히 걷다보면 경주향교를 만날 수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인재들의 배움을 책임지던 일종의 교육기관이다. 요즘으로 치면 서원은 사립학교, 향교는 공립학교에 해당한다. 경주향교는 신라시대 교육기관 국학이 있던 자리로 그 역사가 타 향교에 비해 매우 깊다고 할 수 있겠다. 본디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선조 33년(1600년)에 재건했는데, 광해군 6년(1614년)에 지어진 강학공간 명륜당을 비롯해 무려 1979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중건과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경주향교는 현재 경북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향교로 매년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전통 유교의식인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 여기서 잠깐 토막지식!
월정교 ≠ 문천교
많은 이들이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설화가 깃든 사랑의 다리를 월정교로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삼국유사에는 월정교에 관한 기록이 없다. 세상 사람들 이 월정교를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을 맺어준 오작교라고 이야기하지만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만나기 위해 다리를 건너간 시기는 월정교가 건축되기 약 100년 전 일이고, 그 다리는 월정교에서 19~20m 하류에 있는 문천교였다. 문천교는 1986년 월정교 복원을 위한 조사를 벌이던 문화재 관계자가 그 흔적을 발견했는데, 느릅나무 다리라고 해서 유교(榆橋)라고도 했다.
한복 입고 월정교 노닐까
교촌마을 광장에는 한복을 대여할 수 있는 교촌의상실이 자리한다. 한복 대여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것부터 화려함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디자인까지 다양한 한복과 그에 걸맞은 소품들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교촌마을 곳곳에서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복을 대여했다면 교촌마을의 남쪽을 흐르는 남천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이 어떨까. 이곳에 위치한 월정교는 신라시대 교량을 복원한 것이다. 월정교는 경덕왕 19년(760년)에 일정교와 함께 준공됐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오는데, 규모는 길이 63m, 너비 13m, 높이 6m이다. 고려 충렬왕 6년(1280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520년 이상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월정교는 충담사가 경덕왕을 만나기 위해 건너갔던 다리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의 월정교는 1984년에 발굴조사에 들어가 2018년 4월경에 준공되었다. 조사와 복원까지 무려 34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경관 조명 덕분에 밤이면 운치 있는 야경을 뽐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이처럼 경주 교촌마을은 전통과 문화가 화수분처럼 넘쳐 흐르는 곳이다. 고루한 역사만이 아닌 즐거움을 주는 볼거리가 함께 있는 곳이 바로 교촌마을이다. 최부자의 고귀한 정신과 월정교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한 바퀴 돌아보는 교촌마을 여행은 우리 마음에 잊지 못할 추억을 분명히 아로새겨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