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영광이
이다지도 경주로운
천년 신라의 정원,
디지털 빛으로 다시 피어나다
경주 동궁원의 새로운 변신, 복합문화정원 ‘라원羅園’ 오픈
천 년 전 신라의 왕족들이 거닐던 비밀스러운 정원이 21세기 디지털의 빛을 입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동궁과 월지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라원 ’(경주시 경감로 233)이 마침내 그 문을 연다. 신라의 신묘한 이야기를 품은 여덟 가지 정원과 오감을 깨우는 미디어아트의 향연. 경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라원 곳곳을 산책해 본다.
글 류정헌 사진 최다영, 라원 제공

월성을 닮은 회랑, 그 길에서 만난 신라
봄의 초록 사이로 진회색의 낮은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100미터가 넘는 야외 회랑 사이에 위치한 두 동의 전시관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져 마치 신라 궁궐터 ‘월성’을 연상시킨다. 전시관을 마주해 조성된 두 개의 연못은, 하늘과 구름을 투명하게 담아낸 ‘거울 연못’과 불국사 두 탑의 전설이 어린 영지 연못을 형상화한 ‘자연 연못’ 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곁으로 봉긋하게 솟은 왕릉 모양의 언덕들과 구불구불 흐르는 남천 계류는 마치 신라의 역사서를 한 폭의 정원으로 펼쳐놓은 듯 결 고운 풍경을 자아낸다.
신라의 신묘한 여덟 가지 이야기를 곳곳에 녹여낸 라원의 정원을 천천히 걸으며 자연과 역사를 음미해 보는 것도 좋다. 더 짜릿한 체험을 원한다면 야외정원 모바일 콘텐츠 “라원:신라 8괴의 비밀”을 접속하면 된다. AR 기술을 통해 정원 구석구석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여정은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모험을, 어른들에게는 역사를 대면하는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플라뇌르(Flâneur), 느리게 걷는 자만이 누리는 사치
제1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화가의 정원’ 미디어아트가 시선을 붙잡는다. 고흐, 모네 등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캔버스에 담았던 거장들의 시선과 삶이 디지털 빛으로 재해석되어 벽면을 채운다. 산책하듯 걸으면서 감상하는 빛의 갤러리는 한편의 명화가 전하는 저마다의 감동이 특별하다.
전시관의 핵심 테마는 ‘플라뇌르의 정원’이다. 프랑스어로 ‘느리게 걷는 구경꾼’을 뜻하는 이 말처럼, 이곳은 모든 감각을 열고 자연을 대면하는 법을 제안한다. 숲의 숨소리와 빛의 움직임을 극대화한 미디어아트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멈춤’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전시관의 각 테마존에서 들어서면 먼저 향기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숲속의 싱그러운 향기와 함께 관람하다 보면 느리게 스며드는 감동이 더한다. 다양한 테마존 가운데 경주시의 시목인 소나무와 시화인 개나리, 시조인 까치도 만나볼 수 있다. 숲속을 산책하다 만나는 다양한 주제의 미디어아트는 익숙했던 우리의 자연에서 보다 새로운 감동을 전한다.
가족 관람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돋보인다. 전시관 중앙의 놀이 카페 ‘놀아봄’은 아이들의 활기찬 에너지와 부모의 안락한 휴식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무인 카페 머신에서 내린 향긋한 차 한 잔을 들고, 정원의 사계절을 바라보며 누리는 망중한은 라원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특히 1전시관에서 2전시관으로 이어지는 회랑에 놓인 의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 그 자체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조원, AI의 감성으로 부활하다
긴 야외 회랑을 지나 제2전시관 ‘진귀한 정원’에 다다르면 분위기는 반전된다. 신라 시대 동궁과 월지에서 이국의 진귀한 동식물을 길렀던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미지의 자연이 주는 황홀경을 인공지능(AI)의 시선으로 재현했다.
통창 너머 들어오는 자연광과 실내의 화려한 미디어아트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설치 미술이다. 빛과 시간, 역사와 디지털이 촘촘하게 엮인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과거의 신라가 꿈꾸었던 이상향을 21세기의 감각으로 체험하게 된다. 손을 대고 서서 자신의 정보를 입력하면 자신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꽃이 피어난다. 이 꽃은 진귀한 정원 안에서 직접 찾아 볼 수 있어 방문객들에게는 더욱 즐거운 체험이 된다.
단 하나의 꽃을 완성한 후 들어서는 곳에서는 미지의 바다, 높은 고산과 사막, 사계절의 다양한 풍경을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다.
자연과 디지털이 어우러지는 특별한 경험
라원은 빛과 시간이 만나 다채로운 무늬를 엮는 공간이다. 빛은 자연의 햇살과 디지털 아트의 빛을 의미하며, 시간은 신라의 역사와 계절의 흐름을 반영한다. 정원이라는 공간적·사전적 개념을 한 차원 확장한 감각적 개념으로 변주한 복합문화정원이다. 계절에 따라, 관람객 니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보여줄 라원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 기존의 동궁원과는 또 다른 디지털 미디어아트와 함께하는 라원은 경주에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볼거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