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 本 경주
경주 다이어리
경주의 바다
경주시장 주낙영

문무대왕릉

송대말등대
경주에도 바다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경주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륙의 사적지를 주로 보고가기 때문에 경주를 내륙도시로 알기 십상이다. 그러나 경주에도 바다가 있다. 도심에서 차로 30분 정도만 가면 100리가 넘는 44.5km의 아름다운 해안선이 있다. 경주의 바다는 특별하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허황후, 이사부, 처용, 박재상, 연오랑과 세오녀 등 모두 바다와 관련된 인물들이다.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등 신라를 연 지배층들도 바다를 통해 도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의 바다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인물은 문무대왕 김법민(626 ~ 681)이다. 그는 통일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다양한 해양활동과 전투경험을 통해 바다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였다. 그는 삼국통일을 이룬 직후인 678년 선부(船部)라는 별도의 부서를 설치하였다. 선부는 선박과 항해관계의 업무를 관장하는 지금의 해양수산부에 해당하는 중앙행정기관이었다. 그만큼 수군과 해운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장보고의 대해상제국이 가능했다. 죽어서도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그의 호국정신은 세계유일의 해중왕릉인 문무대왕암을 통해 오롯이 전해지고 있다.

용굴

주상절리
그를 기리기 위해 아들 신문왕이 지은 감은사지와 이견대, 신라고찰 기림사와 골굴사 등 경주의 바닷가에는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많다. 이밖에도 천연기념물이자 경북 동해안의 유일한 국가지질공원인 양남 주상절리군과 감포 송대말 등대 빛체험 전시관, 5개소의 아름다운 해수욕장, 해안선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 등 절경을 자랑하는 명소도 많다. 이처럼 경주바다는 풍부한 역사문화 자원과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며 다른 지역 바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오감만족을 선사하는 멋진 해양관광지이다.
그럼에도 경주의 바다는 잘 알려지지 못했고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져 온 면도 없지 않다. 이를 타개할 비책으로 지난 5월 31일에 뜻깊은 바다 관련 행사가 경주에서 열렸다. 제28회 국가바다의 날 행사를 유치한 것이다. 당초 의도와 달리 대통령을 모시지 못해 아쉬웠지만 해수부장관을 비롯해 전국의 해양 관련 주요 인사들이 모두 경주에 모여 바다의 날을 기념했다. 2박 3일간 해양 수산 산업전도 함께 열렸는데 해양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양수산인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 마침 해양수산부에서 2023 해양레저관광 거점사업을 공모 중에 있었는데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집중적인 로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우리 시의 ‘체험형 신라오션킹덤’ 조성계획안이 최종 선정되어 경주의 관광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490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나정해수욕장 인근 2만 3천여 평 부지 위에 용오름 시워크웨이를 비롯해 사계절 체험형 관광단지가 조성된다. 내륙 사적지관광 위주의 한계를 벗어나 동해안을 대표하는 해양레저관광 거점으로 지역관광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바다는 산업적으로도 중요하다. 세계의 주요 산업단지들이 해안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경주의 바다는 과학기술 산업도시로의 도약도 견인하고 있다. 경주는 한수원 본사를 비롯하여 원전건설에서부터 해체에 이르기까지 원전산업의 전 주기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시는 차세대 미래형 원자로인 소형 모듈원자로(SMR)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집중적으로 연구개발하는 문무대왕과학연구소가 2025년 1차 준공을 목표로 감포에 건설 중에 있다. 이곳에서 개발될 SMR을 상용화, 제조 수출할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경주가 선정되었다. 2030년까지 동경주IC 인근 45만여 평의 부지 위에 4천억원을 투자하여 국가산단을 조성한다. 생산유발효과 6조 7천억, 2만 3천여 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기대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사실 SMR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블루오션이다. 2035년 세계시장 규모만도 630조나 된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이 가장 앞선다고 하니 큰 기대를 가져본다. 우리 경주가 단순히 지역경제뿐 아니라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경제의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하게 될 날을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느 한 유명 유투버가 ‘중국이 초긴장하는’ 한국의 과학기술도시로 경주를 서울, 대전, 판교에 이어 제4위로 소개한 것이 빈말만은 아닐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바다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경주에 바다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축복이다. 사실 오래 전부터 경주는 바다로 열린 도시였다. 내가 태어난 내남면 이조2리는 전포(前浦)마을로 불리는데 앞포구라는 뜻이다. 동네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3백 년 전까지만 해도 형산강 상류인 이곳까지 소금배가 올라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경주를 항구도시라 불러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항구도시란 열린 도시를 의미한다. 세계를 향해, 미래를 향해 열려있을 때 희망이 있다. 바다의 가치를 더욱 소중히 여기면서 잘 가꾸고 활용해 나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