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영광이
이다지도 경주로운
지금,
신라 천년의 산길을 걷다
경주국립공원은 1968년 지리산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국내 유일의 사적 국립공원인 경주국립공원 8개 지구 가운데 단석산과 오봉산은 신라 왕경의 서쪽을 지키던 호국의 산이자 화랑들의 수련장이었다.
가을바람이 능선을 스치는 계절, 천년의 이야기를 품은 산길을 따라 걷는다.
글 임숙영 사진 강시일, 경주국립공원 제공
신선사로 오르는 가을 숲길
단석산(해발 827.2m)을 오를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신선사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주차장에서 신선사까지는 20분 남짓, 다시 정상까지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왕복 세 시간이면 단석산의 풍경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초입의 숲길은 깔끔하게 포장돼 있지만 경사가 제법 가파른 편이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길 위로 가을 햇살이 잘게 부서지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이 발끝에 스치고 지나간다.신선사 서쪽, 거대한 바위 면에는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신선사 마애불상군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인들은 이 돌벽을 법당 삼아 부처와 보살을 새겨 넣었다. 오늘날 국보로 지정된 이 유적은 단석산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동·서·남 세 면이 마치 거대한 석실처럼 둘러싼 암벽 위로 높이 8m에 이르는 불상과 보살상, 공양자상이 새겨져 있다. 특히 아래쪽에는 버선 모양의 모자를 쓰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의 인물상과 승려상이 남아 있어, 그 당시 신라인들의 옷차림과 살아가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가을바람이 산의 능선을 따라 흐른다.
단석산의 바위와 수의지의 물, 오봉산의 마당바위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묻는다.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그 힘을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가.
천년의 이야기를 품은 산길 위에서 경주의 가을은
점점 깊어져 간다.
열일곱 김유신이 기도하던 산
단석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삼국통일의 명장 김유신이다. 「삼국사기」에는 열일곱 살 김유신이 고구려와 백제, 말갈의 침입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보고 중악의 석굴로 들어가 기도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는 나흘 동안 몸과 마음을 씻으며 나라를 지킬 힘을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그러자 베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의로운 일에만 쓰라”는 당부와 함께 비법과 신검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후대 사람들은 기록 속 중악을 단석산으로 여겼다. 김유신은 이 산에서 무술을 익히다 신검으로 바위를 갈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산 이름인 단석(斷石) 역시 여기에서 비롯됐다.
신선사에서 단석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꽤 가파르다. 1시간 남짓 숨을 고르며 오르면 마침내 정상에 닿는다. 마지막 구간은 바위가 드러나 있어 조심스럽지만 길지 않으니 천천히 오르면 된다. 정상에는 산 이름의 유래가 된 바위가 남아 있다. 거대한 칼로 두부를 자르듯 반듯하게 갈라진 모습이 신기하다. 정상에 서면 경주 최고봉다운 조망이 펼쳐진다. 토함산과 남산, 오봉산, 낙동정맥의 산줄기가 겹겹이 이어지고 맑은 날이면 동해까지 시야가 트인다.
화랑의 언덕과 명상 바위
단석산 남쪽으로 내려가면 산세는 한결 부드러워진다. 능선을 따라 넓은 초지가 펼쳐지고, 오래된 소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화랑의 언덕이 나타난다. 언덕 끝 바위에 서면 산과 계곡, 멀리 마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명상 바위라 부른다. 절벽 앞에 잠시 앉아 있으면 누구라도 저절로 말수가 줄어든다. 지역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김유신과 낭도들은 훈련을 마치고 나면 수의지로 내려와 말에게 먼저 물을 먹이고 자신들도 손으로 물을 떠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물가에 선 젊은 화랑들에게 다섯 가지 가르침을 새겼다. 나라에는 충성하고, 부모에게는 효도하며, 벗과는 신의를 지키고, 전쟁터에서는 물러서지 않으며, 함부로 생명을 해치지 말 것.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화랑의 세속오계다. 단석산은 단순히 높은 산이 아니다. 신라의 젊은이들이 용기와 절제, 책임과 우정을 배웠던 배움의 공간이었다.
다섯 봉우리가 이어진 오봉산
단석산과 화랑의 언덕을 떠나 오봉산(해발 685m)으로 향한다. 가을의 오봉산은 단석산과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억새가 흔들리는 능선과 붉게 물든 참나무 숲,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가 계절의 깊이를 더한다. 능선에는 왕경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던 부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고, 산자락에는 선덕여왕과 얽힌 여근곡 이야기가 이어진다. 정상 부근 마당바위에 오르면 겹겹이 이어지는 산줄기와 들판이 한눈에 펼쳐진다. 이름 그대로 거대한 돌 마당인 마당바위는 백여 명이 앉아도 될 만큼 넓다. 김유신이 군사들을 훈련시킨 뒤 이곳에서 보리로 빚은 술을 마시게 하며 기개를 북돋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곳은 영화 ‘명당’, 드라마 ‘선덕여왕’ 그리고 ‘동이’ 등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