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주
경주 산책

신라 천 년의 첫 숨결
남간마을에 들다

신라가 세워지기 전 이곳은 여섯 명의 촌장이 다스리던 진한의 땅이었다. 경주 지역은 6명의 촌장이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다. 육부 촌장의 위패를 모신 육부전, 배씨의 시조인 배지타를 모신 경덕사, 박혁거세 탄강설화의 무대인 우물 나정(蘿井), 박혁거세가 정사를 돌보던 신라 최초의 궁궐터 창림사지, 논밭 위의 소박한 남간사지 당간지주 … 천년의 나라 신라의 첫 새벽을 열었던 남산의 서북쪽 기슭, 남간 마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찬찬히 걸어보았다.

임숙영 사진 최다영

신라의 첫새벽을 연‘육부전’과 ‘나정’

마을 입구의 표지석을 지나자, 풍경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한적하고 고즈넉했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육부전에 먼저 들렀다. 함박웃음을 머금은 백목련이 마치 육부전을 지키는 다정한 문지기처럼 우리를 반겼다. 육부 촌장을 모신 사당 육부전이 나정 옆에 자리하고 있다. 백성을 다스릴 덕 있는 군주를 찾고자 했던 촌장들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신라가 들어서기 전 이곳을 다스리던 여섯 명의 촌장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인물을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마치 광야에서 오는 초인을 기다리듯이…

• 장소 경주시 남간길 37-10

일성왕릉

남간안길을 따라 남간사지 석정을 만나다

인적 드문 길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쬔다. 월암재를 지나 남간길을 걷다 보면 야트막한 들녘이 펼쳐지고 왼쪽으로 남간안길이 나타난다. 마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얕은 담 너머로 노란 산수유가 수줍은 미소를 짓고,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이한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볏짚이 가지런히 쌓여있고, 어느 집 마당에는 매화가 달콤한 향기를 퍼뜨린다. 낮은 담벼락에는 누군가 정성껏 그린 벽화가 남아 있고, 인기척에 둥그런 큰 눈을 반짝이며 밖을 내다보는 소들의 모습이 정겹다. 고개를 들자, 고동색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남간사지 석정이다.

• 장소 경주시 남간안길 7

남간마을 금광평야에 전해지는 명랑법사 이야기

삼국유사에 따르면, 남간사(南澗寺)는 헌덕왕 12년(820) 이전에 세워진 절이었다. 마을 언덕 한쪽에는 남간사지의 우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비록 우물 뚜껑 일부가 파손되어 보수를 거쳤지만, 남간사지 석정은 분황사 석정, 재매정과 함께 신라 우물의 원형을 전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삼국 통일 이후, 문무왕 때 당나라 50만 대군이 신라를 침략하자, 명랑법사와 12명의 승려가 풍랑을 일으켜 이를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이를 두고 명랑법사가 천문과 기상에 해박했던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남간마을의 야트막한 들판은 금광평(金光坪)이라 불리는데, 이는 명랑법사가 세운 절 금광사(金光寺)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간마을 안쪽, 보광사 앞의 못이 금광지라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 장소 경주시 탑동 858-6 일대

금광평을 지키는 남간사지 당간지주

우물을 한참 들여다보다 마을길로 나왔다. 따스한 봄볕이 비치는 들판 너머, 논 한가운데 당간지주가 덩그러니 서 있다. 마을에서 논길로 30m쯤 들어가 살펴보니 바로 남간사지 당간지주이다. 사찰 제례행사때 절 입구에 높이 다는 깃발 ‘당(幢)’, 깃대 ‘당간(幢竿)’, 그 당간을 고정하는 침대를 당간지주(幢竿支柱)라고 한다. 당간지주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 세 개가 뚫려 있으며 맨 위의 ‘十’자 모형 구멍은 다른 당간지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다.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서린 남간사지 당간지주는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금광평을 지키고 있다.

• 장소 경주시 탑동 858-6 남간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909호

금광지 대숲을 끼고 일성왕릉(逸聖王陵) 가는 길

푸른 대숲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가슴이 탁 트인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듯 빼곡히 서 있고, 외길이 끝나는 곳에는 고요한 능이 자리하고 있다. 소나무를 뜻하는 ‘솔’의 의미는 ‘으뜸’이다. 격이 다른 소나무숲 아래 연분홍 진달래가 우아한 미소로 눈길을 끈다. 소박하고 고졸한 맛이 일품인 일성왕릉을 천천히 둘러보며 세워둔 표지판을 다시 읽어본다. 신라 제7대 일성왕은 문무와 지혜를 겸비한 왕으로, 재위 중에 정사당을 설치하여 대신들과 국정을 논의했고, 경작지를 늘리고 제방을 수리하며 농업을 장려해 경제를 살찌웠다. 족히 수백 년은 된 듯한 소나무들이 둘러싼 이곳에서, 나는 문득 천 년 전 신라의 첫 숨결을 떠올린다. 바람이 불어온다. 시간을 넘어, 신라의 기억을 품은 채.

• 장소 경주시 탑동 산23번지

남간(南澗)마을

경주시 남산 서쪽에 자리한 남간마을은 수많은 문화재가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경주의 시작을 알리는 ‘박혁거세 설화 나정’, 경주의 첫 궁궐터 ‘창림사지’, 보물로 지정된 ‘남간사지 당간지주’, 신라의 우물 연구 주요 자료인 ‘남간사지 석정’, 명랑법사의 이야기가 전하는 ‘금광평야’까지…
별을 뿌려 놓은 듯 절이 많았고, 기러기 줄 지어 가듯 탑이 많았던 경주의 굽이굽이 마을 이야기를 찾아가 들어보자.

• 장소 경주시 남간길 37-10

어서와! 경주한국관광의 별,
경주에서 오래도록 빛나다
히스토리 경주푸른 뱀띠의 해,
을사년 뱀(蛇)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