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주
히스토리 경주
푸른 뱀띠의 해
푸른 뱀띠의 해,
을사년 뱀(蛇) 이야기
글 임숙영 사진 최다영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뱀과 가까이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뱀을 잡아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으며, 강원도 최전방 산골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는 극한 상황에 대비한 생존훈련의 차원에서 뱀을 잡아먹었던 경험도 있다.
옛말 또는 사투리로 비얌 또는 배암이라고 부르는 뱀은 동양문화에서 지혜를 상징하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뱀띠 해에 태어난 사람을 총명하다고 여겼다. 태몽으로는 큰 구렁이를 보면 사내아이를 낳고 작은 뱀이나 꽃뱀을 보면 여자아이를 낳는다고 한다.
뱀의 날카로운 눈매, 날름거리는 혀, 뾰족한 이빨, 은밀하고도 빠른 움직임 등 모습 그 자체만으로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 뱀에게 물려 피해를 본 사례를 비롯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뱀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는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이런 뱀의 외형과 물리적 피해는 뱀을 더욱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고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인간은 뱀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특정 물건을 이용하거나, 주술적인 힘을 빌려 뱀을 퇴치하고자 하기도 하고, 뱀을 잡기 위한 특정 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땅 위와 땅속을 오가며 살아가는 뱀을 보면서 뱀이 이승과 저승의 서로 다른 두 세상을 오갈 수 있는 신비로운 존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뱀과 비슷한 모양 또는 뱀이 그려진 도구를 만들어 신과의 소통이 필요한 의례에 사용했다.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고, 구불구불한 몸으로 이곳저곳을 오가며, 한번에 10여 개의 알을 낳는 뱀의 생명력은 인간에게 풍요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농사가 잘되도록 비를 내려주는 수신(水神)이 되기도 하고 가족 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변신하며 더 나아가 이 세상을 만든 창조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자주 나타났던 황구렁이가 있었는데 할머니께서는 황구렁이가 나타날 때마다 집 지킴이로 여겨서 정성스럽게 복을 빌었다. 그러다 어느 해 봄에 울타리를 새로 고치다가 발견된 황구렁이를 아버지께서 잡아 돼지우리에 던지고 말았는데 할머니께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렸으나 이미 돼지먹이가 된 뒤였다.
2025년 을사(乙巳)년을 푸른 뱀띠의 해라고 하는데 십간에 해당하는 을(乙)은 동방(東方)에 해당하고 오행에서는 나무(木)를 상징하며 방위색은 푸른색을 상징하니 이로 인하여 푸른색의 을(乙)과 뱀띠에 해당하는 사(巳)를 합쳐서 푸른 뱀띠의 해라고 하는 것이다. 해당하는 달은 음력 4월인 사월(巳月)이며, 시간으론 오전 9~11시, 방향으론 정남(正南)에서 동으로 30도의 방위를 중심으로 한 15도 각도 안 남남동(南南東)에 해당한다. 절기상으로는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나라에 푸른 뱀이 있을까? 학술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없다. 다만 2000년 여름 충북 괴산에서 푸른 뱀(靑蛇) 한 마리가 발견되어 포획된 적이 있었는데 돌연변이에 의한 구렁이의 변종으로 확인되었다.
뱀은 원시 도마뱀들 중에서 앞·뒷다리가 전부 퇴화되고 몸이 가늘고 길어지는 등 독특하게 진화한 파충류다. 남극과 아이슬란드 섬, 아일랜드 섬, 뉴질랜드를 이루는 북섬과 남섬을 제외한 지구의 어느 곳에서나 서식하며 대략 3,000여 종이 있는데 그중에서 50여 종은 독사로 분류된다. 독사는 크게 2가지 부류가 있는데 신경독을 가진 코브라류와 혈액독을 가진 살무사류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뱀은 11종 정도이다. 그 가운데 무독성 뱀은 7종으로, 무자치(물뱀, 무자수, 수사(水蛇)), 누룩뱀(밀뱀, 석화사(石花蛇), 사구랭이), 능구렁이(능사, 적동사(赤棟蛇)), 실뱀(비사(飛蛇)), 대륙유혈목이, 비바리뱀(제주도에만 있다), 구렁이(황구렁이와 먹구렁이(오사(烏蛇))가 있다) 등이 있고, 독사로는 혈액독을 가진 3종의 살무사와 1종의 유혈목이가 있다. 살무사류에는 쇠살무사(불독사), 살무사, 까치살무사(칠점사, 까치독사)가 있다. 쇠살무사는 가장 흔히 만나는 독사로 몸집이 작으며 무늬와 색깔의 변이가 심한 편이다. 살무사는 동그란 무늬가 특징이고, 까치살무사는 우리나라의 독사 가운데 가장 크며 특이하게도 혈액독과 신경독을 모두 가지고 있다. 유혈목이(너불대, 꽃뱀, 화사(花蛇))는 옛날에는 무독성의 뱀인 줄 알았다가 일본의 한 중학생이 물려 죽은 일이 있은 뒤부터 혈액독을 가진 독사로 분류되었다. 특이하게도 독니가 다른 독사 종류와는 다르게 목구멍 가까이에 있어서 평소에는 물리더라도 독니에 물리지 않았기에 독사인 줄을 몰랐던 것이었다.
한때 희귀한 보약이나 길조로 여겨지기도 했던 백사는 별다른 종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알비노증후군에 의한 색소결핍증으로 생기는 현상으로 특별한 의미가 없다.
뱀에게 가장 강력한 천적은 돼지이다. 돼지는 가죽과 피하지방이 두꺼워서 독사에게 물려도 전혀 문제가 없다. 멧돼지는 독사를 비롯한 각종 뱀들을 보는 대로 잡아먹는다. 심지어는 겨울잠을 자는 뱀무리를 통째로 털어먹기도 한다.
인도의 신전에는 멧돼지신이 코브라를 밟아 제압하는 조각상이 있을 정도이다. 중학생일 때 집 앞에서 큼직한 살무사 한 마리를 생포하여 곧장 돼지우리에 집어넣었더니 낮잠 자다가 일어난 돼지가 이게 웬 횡재냐? 라는 반응으로 순식간에 살무사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역시 뱀의 천적이 돼지임을 확인하였다.
경주에서 뱀을 만날 수 있는 문화유적으로는 신라시대 능묘의 십이지신상으로 조각된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성덕왕릉(조양동), 경덕왕릉(내남면 부지리), 원성왕릉(외동읍 괘릉리), 흥덕왕릉(안강읍 육통리), 진덕여왕릉(현곡면 오류리), 김유신묘(충효동), 방형분(구정동), 능지탑(배반동), 원원사지 삼층석탑(외동읍 모화리)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토우장식목긴항아리를 비롯한 각종 유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