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주
경주 산책
여름밤 경주가 그려낸 반영,
아름다운 일렁임을 따라서
밝은 햇살이 비출 때는 보지 못했던 경주의 숨겨진 풍경이 신기루처럼 아름답게 일렁이는 여름이다. 뜨겁던 낮의 열기가 식고 어둠이 내려앉는 밤, 유난히 아름답게 피어나는 경주의 모습들이 있다.
글 이재경 사진 자사포토DB 및 경주시청 제공

동궁과 월지에서 만난 신라의 밤
경주의 야경이라고 하면 동궁과 월지가 먼저 떠오른다. 잎사귀를 잔뜩 드리운 나무숲에 둘러싸인 동궁과 달빛이 내려 앉은 월지 풍경은 그윽한 대비로 더욱 빛난다. 여름밤에 동궁과 월지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이곳은 원래 신라 시대에 왕자들이 기거하던 ‘동궁’이 있던 자리로, 밤을 환하게 밝히는 조명들은 그 시절과 다르겠으나 동궁을 찾았던 옛사람들이 보았을 풍경을 감상하며 상상해 볼 수 있다.
구불구불하게 펼쳐진 월지는 바다처럼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동궁에서 연회 및 회의 장소로 쓰였던 ‘임해전’의 이름을 보면 이러한 조경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수면에 비치는 아름다운 건물의 반영은 특히나 깊고 선명하여 월지 아래에 신라로 향하는 관문이 펼쳐져 있는 것만 같다.

경주의 수면을 가로지르는 빛의 향연
한여름밤, 물 위로 드리워지는 아름다운 반영을 보고 싶다면 ‘다리’ 역시 좋은 선택지다. 수면을 가로지르는 건축물의 윤곽선을 따라 조명이 반짝이며 물속에 또 다른 세계를 그려낸다. 경주에서 그런 풍경을 손에 꼽자면 곧 두 곳이 떠오른다. 신라의 풍류가 일품인 월정교와 현대적인 조경미가 빛나는 물너울교다. 월정교는 2018년에 복원을 마치고 오랜 시간의 터널을 지나 우리에게 돌아왔다. 알록달록한 단청과 차분한 조명이 어우러지며 만드는 매력적인 색감은 환상 속 세계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보문관광단지에 있는 물너울교는 이름대로 멀리서 강물에 넘실넘실 비치는 아치형 다리의 반영이 매력적이다. 월정교와 물너울교 모두 직접 걸어서 건너볼 수 있어 야경 속을 거니는 즐거움도 있다. 여름밤의 낭만이 한층 무르익는다.
이 외에도 경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형산강 위의 황금대교, 교동교 등도 볼 만하다.
어둠에 젖은 바다에서 등대 빛을 드리우다
그런가 하면, 아득한 어둠 속에 있어서 더욱 빛나는 명소도 있다. 감포항 근처에서 동해를 지키고 우뚝 서 있는 송대말등대다. 1955년 처음 지어진 등대 옆에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형상화하여 2001년에 새로운 등대가 들어섰다.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라는 ‘송대말’의 이름 뜻대로 등대 주변에는 나이 든 해송림이 운치 있게 자리한다.
해가 지기 전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열리는 송대말 빛 체험 전시관에서는 등대와 빛을 다룬 전시, 아름다운 미디어 아트를 볼 수 있다. 이윽고 어둠이 내려앉고 나면 새카매진 바다 위로 등대가 희망의 빛을 드리워 준다. 암초가 많아 위험했던 감포 앞바다에서 오래도록 많은 배들의 안전을 책임졌을 아름다운 빛과 야경이다.
송대말에서 보는 강포항 방파제 하얀 등대는 지난 2006년 감은사지 3층 석탑을 음각화 기법으로 형상화했다.




하늘에 박힌 별처럼, 드론으로 그리는 반짝임
수면 위로 펼쳐지는 야경뿐 아니라 경주 하늘을 수놓는 빛도 하나의 볼거리다. 언제나 찾아가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서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드론 아트쇼가 4월부터 12월까지 경주의 주요 축제와 연계해 펼쳐진다. 이전에는 축제에서 불꽃놀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지금은 드론 아트쇼가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300에서 500대에 이르는 드론들이 음악에 맞추어 움직이며 하늘에 그림을 그려낸다. 동물이나 꽃, 아이들이 좋아하는 브레드이발소 캐릭터 등 친숙한 이미지부터 경주의 대표 문화유산, 금이와 관이, APEC 성공 기념 문구 등 축제 맞춤형 콘텐츠까지 선보인다. 여름 중에는 6월 시민의 날에 드론 아트쇼를 만나볼 수 있다. 드론들은 올해 10번에 걸쳐 하늘에 아름다운 신기루를 그려낸다고 한다. 경주의 새롭고 특별한 밤을 함께해 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