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주
어서와! 경주
‘황촌’에서
‘힙플레이스’로, 황오동
요즘 경주에서 가장 ‘힙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곳이 있다. 오래된 것의 투박한 멋과 새로운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뉴트로’의 성지, 바로 황오동이다. 신라의 찬란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경주에서 황오동은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청년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공간들로 끊임없이 채워지고 있다.
글 박성하 사진 최다영
옛 경주역, 문화 플랫폼으로
다시 피어나다
신라 왕궁 인근에 위치하여 일찍이 ‘황촌’으로 불렸던 황오동은, 오랫동안 경주역을 중심으로 상업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경주역이 폐역되면서 한때 상권 침체와 함께 잊혀 가는 듯한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 황오동은 낡은 건물의 투박한 매력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청년 관광객들의 ‘힙한’ 감성 충전 핫플레이스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황오동으로 들어서는 첫걸음은 옛 경주역이 드라마틱하게 변신한 ‘경주문화관 1918’에서 시작된다. 한 세기 넘게 경주의 관문이었던 옛 경주역은, 2021년 폐역된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고 ‘경주문화관 1918’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여행객의 발자취와 이야기를 품었던 역은 이제 전시와 공연, 문화예술 교육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청년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선사하는 복합문화공간이 되고 있다.
기차가 오가던 플랫폼을 거닐며 빈티지한 감성의 ‘인생 사진’을 남기는 것은 물론, 정기적으로 열리는 다채로운 행사에 참여하며 특별한 추억을 쌓을 수 있다. 고즈넉한 역사의 정취 위에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진 이곳은, 황오동의 뉴트로 감성을 대표하는 공간이자 청년문화의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주민과 여행자가 함께 빚어내는
특별한 풍경
옛 경주역 동편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격적으로 황오동으로 들어서면, ‘황촌 마을호텔’이라는 간판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한때는 텅 비었던 빈집들이 ‘행복 꿈자리’, ‘황오여관’, ‘스테이황촌’ 같은 정감 어린 이름을 얻고 새로운 생명을 되찾았다. 그렇게 다시 숨 쉬기 시작한 집들이 이제는 여행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황오동만의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평범한 호텔이나 펜션과는 달리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며, 동네의 구석구석을 탐방하며 진정한 로컬 감성을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황오동의 숨겨진 보석이자, 마을의 활력을 불어넣는 복합문화공간 ‘황촌마을활력소’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2023년 11월 문을 연 황촌마을활력소는 단순한 커뮤니티 센터를 넘어 황오동 도시재생 사업의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담한 도서관과 전시실로 꾸며진 1층은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감성 공간이다. 2층 코워킹룸은 청년 창작자들의 아이디어가 자라는 창의 플랫폼이 되고 있다. 건강상담실, 동아리실 등 생활 밀착형 공간이 더해져 주민과 방문객 모두가 머물고 싶은 장소로 완성됐다. 지역 협동조합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며, 황오동만의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 모델을 실현하고 있다.
시간의 결을 품은 공간
청년들의 감성 ‘핫플레이스’로
황오동의 매력은 화려한 변화보다, 오래된 시간 속에 잔잔히 숨 쉬는 감성에 있다. 낡은 외벽을 그대로 둔 채 문을 연 카페와 서점은 도시의 오래된 기억을 현재형으로 재해석한다. 전통 한옥의 단아함을 살린 북카페에서는 차 한잔과 함께 경주의 역사와 사람 이야기를 읽으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현대적인 감각 속에서도 고유한 온기가 감도는 이유는, 공간이 품은 시간의 결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골목에서는 세월이 묻어나는 건물과 젊은 감성이 절묘하게 만난다. 오래된 적산가옥을 개조한 카페들은 과거의 흔적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미감을 더해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벽의 균열, 녹슨 철제 문고리, 그리고 빈티지 조명 아래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감성의 속도’를 늦춘다. 황오동의 공간들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의 향기를 체험하는 무대다. 조용한 오후, 한적한 골목에 앉아 창밖으로 스며드는 빛을 바라보면, 이곳이 왜 ‘머물고 싶은 동네’로 불리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문학과 예술이 깃든
벽화 거리
경주 출신 문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벽화 거리는 황오동의 매력을 한층 깊게 한다. 특히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숨결이 깃든 ‘동리 거리’는 이곳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벽화와 시화가 어우러진 골목은 작은 미술관처럼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김동리와 박목월의 작품은 발길을 멈추게 하고, 한 편의 시를 음미하도록 만든다. 좁고 아기자기한 파스텔톤 길을 걸으면, 잠시 일상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골목을 걷는 동안 들려오는 커피머신 소리, 빵 굽는 냄새,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더해져, 황오동의 매력은 시각과 청각, 후각까지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 멈춤과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황오동은 느리게 거닐수록 매력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파스텔빛 벽화와 오래된 골목의 질감, 햇살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풍경은 사진으로 담기에도 완벽하다. 그렇게, 황오동에서의 산책은 단순한 발걸음을 넘어 마음을 채우는 경험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