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주
어서와! 경주

은빛 억새의 고요한 노래를 듣다
억새 트레킹 명소, 동대봉산 무장봉

가을의 무장산은 바람을 품은 산이다. 바람이 억새를 스치면, 풀잎마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깨어난다. 그 속에는 칼과 방패를 내려놓은 군사들의 숨결이 있고, 전쟁이 끝나고 비로소 찾아온 고요의 숨소리가 있다.

임숙영 사진 경주시 제공

서울(지금의 경주) 동북쪽 20리쯤 되는 암곡촌 북쪽에 무장사가 있으니, 신라 제38대 원성대왕(元聖大王)의 아버지 대아간 효양, 즉 추봉된 명덕대왕의 숙부 파진찬(波珍飡)을 추모해서 세운 것이다. 그윽한 골짜기가 몹시 험준해서 마치 깎아 세운 듯하다. …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태종(太宗)이 삼국(三國)을 통일한 뒤에 병기와 투구를 이 골짜기 속에 감추어 두었기 때문에 무장사라고 한다”라고 한다.

출처_ <삼국유사>기이 제3권 탑상 제4 무장사 미타전

동대봉산 무장봉

동대봉산 무장봉, 그 이름을 새기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병기와 투구를 묻었다고 전해지는 산이 있다. 무장산은 이름 그대로 무장해제의 뜻이 담겨 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는 무기가 필요 없는 시대를 열고자 하는 왕의 마음이 읽힌다.
통일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을까… 그 무게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이름 앞에 문득 마음이 숙연해진다. 함월산과 토함산을 이웃에 둔 동대봉산 무장봉으로 떠나본다.

암곡마을에서 시작하는 산행

보문관광단지에서 차로 15분, 무장산 등반로 초입인 암곡마을에 닿는다. 2022년 태풍 힌남노로 인해 일부 길이 끊겼지만, 지금은 복구가 완료되어 전 구간이 다시 개방되었다. 암곡마을은 가을철이면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암곡마을 주차장에서 억새 군락지까지는 약 6.5km, 정상으로 향하는 등반코스는 두 갈래 길이 있다.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 완만한 계곡 코스와 경사도가 제법 있지만 짧게 오르는 산능선 코스가 있다. 계곡 길은 남녀노소 모두 부담이 없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등산로도 잘 닦여 있다. 계곡 탐방로를 오르다 보면 무장사 절터와 무장사지 삼층석탑도 만날 수 있다.

느린 걸음으로 만나는 무장사지터 보물 두 점

마을을 지나 계곡 길을 걷는다. 물소리와 바람결에 맞춰 발걸음이 느려진다. 무장사는 원성왕의 부친 효양이 숙부 파진찬을 기려 지은 절로 이곳에는 미타전이 있었다. 무장사지에는 보물 두 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먼저 보물 ‘경주 무장사지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이다. 아래층 기단엔 모서리와 가운데 기둥을 새겼고, 위층 기단엔 둥근 안상을 2개씩 조각했다.
탑신의 처마는 직선으로 뻗다가 끝에서 부드럽게 살짝 들려있다. 보물 ‘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는 신라 소성왕의 왕비인 계화 부인이 왕의 명복을 빌며 아미타불상을 조성한 과정을 기록한 비이다.
비석 조각에 새겨진 글을 통해 이곳이 무장사였음이 밝혀졌다. 잘린 머릿돌에는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움켜쥔 용이 새겨져 있고, 왼쪽 면에는 금석학자인 추사 김정희의 조사기가 남아 있다. 이 석비는 통일신라 머릿돌 양식 변화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암곡동
주차장 무장사지 제1공영주차장
화장실 주차장, 암곡탐방지원센터, 계곡코스 중간 간이화장실이용시간 09:00~18:00
※ 국립공원 탐방시간 준수
문의 경주국립공원(054-778-4100)

탁 트인 능선과 억새평원의 물결

길은 짧지 않다. 그러나 담을 것이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 탁 트인 정상부에 오르면 억새군락이 펼쳐진다. 44만 평의 드넓은 초원 위에 빛나는 은빛 물결. 하늘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은빛 파도를 만든다. 일상에 지친 우리의 영혼까지 눈부신 감동으로 물든다.
등산에 조금 자신이 있다면 빠르게 오르는 능선 코스를 추천한다. 초반 약 1km의 ‘깔딱고개’만 넘으면 빠르게 무장봉 억새군락에 닿을 수 있다. 억새군락 중앙에 설치된 포토존, 동대봉산 표지석, 억새군락 탐방로 곁에서, 인생샷을 남겨 보자.

흘린 땀이 주는 감동

원점 회귀 약 11.8km. 2개의 등반코스가 있으니, 올라올 때와는 다른 코스로 내려가 보자. 하산길,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 사이로 마음이 머문다. 바람은 느리게 불고 억새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무장산 하늘 아래, 사람의 시간이 잠시 멈춘다.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은 드라마 <선덕여왕>,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배경이 되며 더 알려졌다. 그러나 카메라에 담긴 장면보다 땀과 숨결로 기억되는 길이 우리에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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