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주
경주 산책
세계의 발걸음이 머무는
경주의 가을을 걷다
지구촌이 하나로 모이는 2025년 APEC 정상회의 기간, 경주는 가을의 색을 품은 산책길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바쁜 공식 일정 사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도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산책로에서 경주의 가을을 마주해 본다.
글 이재경 사진 자사포토DB, 경주시, 경북문화관광공사 제공

잔잔한 물결 따라 걷는 힐링 코스, 보문호반길
경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보문관광단지 중심에 자리한 보문호 둘레길은 누구나 쉽게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산책로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약 6km 구간으로, 완주에는 대략 2시간이 소요된다. 걷는 동안 호수와 숲,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이 이어지며, 물결의 반짝임과 숲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길가의 풀과 들꽃이 보여주는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빛과 색의 변화가 걸음을 더욱 즐겁게 한다.
길 곳곳에는 물너울공원과 사랑공원 같은 작은 쉼터가 있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바라볼 수 있다. 산책길을 걷다 보면, 박목월 시인의 시비를 마주하게 된다. 풍경에 취한 걸음 위에 「나그네」의 시 한 구절이 여행길의 사색을 더해준다. 풍경 속에 스며든 시의 언어는 바람과 어우러져 마음에 잔잔히 머문다.
보문호반길은 자전거와 ATV 같은 차량의 통행이 금지돼 있어 산책객들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특히 호텔과 콘도, 리조트가 모여 있는 보문호 수상 공연장에서 경주월드 인근 호반1교에 이르는 구간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인기 코스이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행자들 또한 경주의 고즈넉한 풍광 속에 스며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의 산책은 단순한 여가를 넘어, 경주의 자연과 함께하는 특별한 경험으로 오래 기억된다.



자연과 빛이 어우러진, 비움명상길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경주엑스포대공원은 도심 속에서 문화와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공원에는 전시관, 전망탑, 공연장, 조각 작품 등 다양한 시설이 자리해 있으며, 사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정원은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역사와 예술, 자연을 아우르는 종합문화공간으로서, 경주를 찾는 방문객들이 꼭 들러야 할 코스로 손꼽힌다.
공원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공간은 ‘비움명상길’이다. 활용되지 않던 화랑숲 부지를 정비해 조성한 이 둘레길은 약 2km 구간으로, 호수와 억새풀,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산책하기에 적합하다. 길은 ‘경주의 8색’을 주제로 꾸며져 있으며, 각 구간마다 설치된 돌과 자갈은 각각의 상징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방문객들은 숲길을 걸으며 자연의 정취를 느끼는 동시에 경주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든 공간적 의미를 체험할 수 있다.
해 질 무렵부터는 야간 프로그램인 ‘신라를 담은 별(루미 나이트)’이 진행된다. 수천 개의 LED 조명이 숲과 산책로, 연못을 밝히며 화려한 야경을 연출한다. 특히 신라의 신화를 모티프로 한 빛의 조형물은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며, 바닥에 설치된 황토 세라믹볼의 은은한 빛은 걷는 길을 안전하고 따뜻하게 비춘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별빛과 어우러진 풍경은 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신라의 숨결이 머무는 산책로, 선덕여왕길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들판과 단풍이 고운 빛으로 옷을 갈아입는 계절. 이맘때 걷기에 가장 좋은 산책로 중 하나인 선덕여왕길은 경주시 보문동 명활산성에서 진평왕릉까지 약 1.8km에 걸쳐 이어진다. 봄에는 화사한 벚꽃이 길을 수놓고, 여름엔 짙푸른 그늘이 시원함을 더하지만, 가을의 선덕여왕길은 단연 특별하다. 부드러운 가을 햇살이 황토 흙길 위로 스며들고 붉게 물든 단풍잎이 길 위에 펼쳐지며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특히 황토 흙길은 맨발로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흙의 부드러운 촉감이 발바닥을 감싸고, 바람과 햇빛이 온몸을 스친다. 이러한 황토 흙길은 외국인 방문객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천천히 걸으며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회의와 일상에서 쌓인 긴장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세계의 손님들이 신라 천년의 품속을 느끼고, 서로 다른 문화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시간을 보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을까. 선덕여왕길에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경주의 가을과 역사, 그리고 평화를 함께 담아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