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행복
경주 사람

경주를 가장 경주답게
신라 천년의 문화유산을 기록하다
문화유산 전문 사진작가_오세윤
구름이 좋은 날, 길을 나섰다.
선도산 아래 자리한 아담한 이층집 마당이 소담스럽다. 그 옆에는 북한을 여러 번 오갔다는 단단한 모하비가 서 있다.
맑고 깊은 눈빛의 오세윤 작가, 그가 걸어온 사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글 임숙영 사진 최다영


1997년 경주국립박물관에 들어간 그는 2년간 경주 남산 일원에 살다시피 하며 촬영을 이어갔다. 그 결실로 2000년 발간된 ‘경주 남산’ 도록으로 UNESCO 세계유산 등재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었다.


처음 만난 카메라, CANON
경주에 산 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나를 ‘타지 사람’이라고 부른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경주의 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한 오세윤 작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카메라를 마주했다. 뷰 파인더 속 풍경을 순간 가슴이 두근거려 밤잠을 설칠 만큼 갖고 싶었다.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던 아버지를 졸라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어서 돌려주고 오라”는 꾸중뿐이었다. 대학교 2학년, 삼국유사 수업에서 경주가 모든 이야기의 무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는 마치 새로 태어난 듯한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앞두고 그는 인생의 큰 결심을 한다. 등록금과 1년 치 방값을 통째로 카메라와 맞바꾼 것이다.
사각 프레임 속 세상으로
등록금도 방값도 없이 남은 건 카메라 한 대뿐, 그는 과사무실 한쪽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사정을 알게 된 교수님의 도움으로 다시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졸업앨범 제작에 뛰어들었다. 학생들이 부담하는 가격은 낮추고, 촬영 방식은 신선하게 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1989년 졸업과 동시에 경주시 문화재 일을 하는 한 사진관에 취업했다. 사진관에 있던 문화재 목록을 손에 들고 경주 구석구석을 오토바이로 누볐다.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러던 중 삼릉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 당시 강우방 국립박물관장의 권유로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일하게 된다. 강우방 관장은 오세윤 작가가 가진 문화재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시선을 단박에알아보았다.
UNESCO 등재를 위한 2년간의 여정 <남산>
UNESCO 등재를 위한 2년간의 여정
<남산>
1997년 경주국립박물관에 들어간 그는 2년간 경주 남산 일원에 살다시피 하며 촬영을 이어갔다. 그 결실로 2000년 발간된 ‘경주 남산’ 도록으로 UNESCO 세계유산 등재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었다. 2022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원 업무 유공으로 문화재청장 표창을 받았다. 그에게 ‘경주와 신라’는 종교이자 신앙이었다.
지난 20년간 발간한 책만 200여 권, 그의 작업실에서 펼쳐본 수많은 도록 중 특히 ‘경주국립박물관 명품 100선’은 압권이었다. 정확함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살아있는 사진 속 유물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진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먼저 인간이 되는 것
사진은 찰나의 미학이다. 기계 조작, 천문과 날씨에 대한 이해, 예술적 감성과 문학적 소양 모두 중요하지만 먼저 ‘인간이 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진관에서 일할 때, 그는 연합뉴스 김동진 기자의 항공촬영 사진에 매료됐다. 결국 경비행기 자격증을 따고 직접 하늘에 올랐다. 두 대의 경비행기를 몰며 그는 새로운 시선의 세계를 개척했다.
여진당(如眞堂), 사진을 참되게 찍는다
국립박물관 관장을 역임하신 이영훈 관장님이 지어준 당호 ‘여진당’은 단순히 ‘사진을 참되게 찍는다’라는 의미를 넘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에게 사진은 시 한 편을 이미지로 옮기는 일이다. 문화유산은 단순한 피사체가 아니라, 역사와 정신이 깃든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라 제1경, 남산 ‘연화대좌’
눈 감고도 경주의 구석구석을 훤히 그려낼 수 있는 오세윤 작가에게 단 한 곳의 명소를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연화대좌’. 남산 용장계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연화대좌는, 마치 거대한 연꽃이 대지를 받치고 있는 듯하다. 그 크기는 어른 3~4명이 둘러앉아도 넉넉할 만큼 웅장하다. 천년의 바람과 햇살을 품은 그 자리에 서면 신라의 숨결이 조용히 들려오는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신라를 완성하고 싶소”
그의 말 속에는 모든 유적과 유물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정신까지 온전히 기록해 후대에 전하고 싶은 뜨거운 사명감이 담겨 있다. 아침이면 일어나 창밖 저 멀리 창림사지 3층 석탑을 오래 바라본다. 그 곁에는 오랜 벗, 고(故) 이근직 교수가 묻혀 있다. 하늘도 한 번 올려다보고 날씨를 가늠한 뒤, 오늘의 메인 장소를 정한다.


그는 말한다. “경주를 경주답게 보려면 KTX 타고 급히 둘러보고 갈 게 아니라 공부를 좀 하고 오면 좋습니다.” 또 경주시민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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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을 나서며 그는 하늘을 한 번 바라본 뒤, “이제 황룡사지 터로 가야겠다” 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작가 오세윤
• 1990년 문화유산 사진 전문 촬영 프리랜서
• 1997~2001년 국립경주박물관 유물 문화재 담당
• 국립중앙박물관 학술조사, 경주 남산 학술조사 자문위원
• 국립박물관 특별전 전시도록 촬영
• 몽골, 멕시코 해외유적 발굴 현장
• 북한 개성 만월대 발굴유적 촬영

